팔각모의 추억 1편

2009/05/16 06:45 | ROKMC


야심한 밤에 잠이 안와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컴퓨터랑 전혀 관련없는 본인의 군시절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편이라고 붙인 이유는 가끔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랜덤하게 포스팅해볼까 생각중이라 일단 이렇게 붙였습니다.

 

우선 술자리에서 선배들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군생활 이야기에 질리신 분들은 당장 스크롤 내리거나 창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실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 두가지를 조합해보면... 저는 술자리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제 군생활에 대해서 늘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저에겐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들이었지만 그게 남들에겐 한낱 군바리 이야기일 뿐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지요.

 

또한 저는 대한민국해병대 출신입니다. 여기서 왜 그냥 해병대라고 안하고 대한민국해병대라고 하느냐 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계실텐데 해병대 나온 애들은 원래 그런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그냥 유치해 보이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아무튼 따라서 저는 더더욱 군생활 이야기를 밖에서 꺼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해병대가 얼마나 욕을 먹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일부 해병들의 추태에 대해서는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요즘은 그런 일들이 많이 줄어든 편이지요.

 

 

 

우선 제목이 "팔각모의 추억" 인데 오늘은 여기에 엮인 이야기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제목 : 팔각모의 추억

 

나태어나 이강산에 해병이 되어

꽃피고 눈내린지 어언 30개월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상륙전의 해병대가 뭉치면 그만이지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청춘

팔각모에 실려보낸 꽃다운 이내청춘

 

저는 해병 912기입니다. 슬슬 신상정보 다 나오는군요. ㅠㅠ 뒷조사는 하지 마시고 그냥 이야기만 가볍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12월

저는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1사단 21대대 3중대에 배치받았습니다. (설마 제 블로그 방문자중에 버팔로 출신은 안계시길 바라며...) 처음 중대에 왔을 때는 아마 중대 TTT 때문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매우 바빴습니다. 저와 동기는 신병이라 (신병 또는 새 보급품을 "앗쎄이" 라고 부르는데 발음은 알아도 철자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훈련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당시엔 "정예해병" 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거의 말년 병장중에 돌아가면서 신병들 동화교육 담당도 하고 아픈 해병들 의무실 진료 담당도 책임졌던 그런 선임이 저랑 동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두렵기도 한 시기였고, 또한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던 시기이기도 했죠.

 

달콤한 동화교육 기간은 잠시였고, 본격적으로 소대에 배치되고 진정한 해병대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800자 선임들이 보면 900자는 해병으로 보이지 않을테고, 700자 선임들이 보면 800자는 해병으로 보이지 않겠죠. 그건 군대의 순리이고 어찌 보면 이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 "우리 때는 어쨌는데 말이야..." 아무튼 제가 헬게이트 오픈이라고 표현을 해도 제 선임들은 그냥 코웃음만 치실 것입니다. 사실 "흐른다" 라는 표현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분명 이전 세대가 이후 세대보다 고생을 더 했던건 맞습니다. 여러가지 여건들이 점점 개선되고 문화가 바뀌면서 군대도 흐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이치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세대의 군생활이 편한가? 이것 또한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여건이 개선되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편의가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군대는 군대일 뿐이고 뭘 하더라도 힘든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론 이전 세대들이 후세대들에 비해서 더 힘들게 군생활을 했죠. 하지만 절대적으로 보면 흘러버린 군대라고 하더라도 민간인에 비해서는 여전히 엄청 고생을 합니다.

 

아무튼 제가 헬게이트 열렸다고 표현한 것은 제가 소대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위로휴가 (100일 휴가) 나가기 전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맞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뭐 특별해서 맞은것도 아니고 그당시에는 맞는게 일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당연히 그걸 알고 해병대에 지원했고, 정도와 빈도는 다르겠지만 제 동기들이나 그 위의 선임들은 거의 비슷하게 생활했을겁니다. 아 물론 당시에 3연대는 구타가혹행위 척결 때문에 연대급으로 초토화를 시켜서 영창에 수백명이 갔던가? 좀 과장인거 같지만 아무튼 징계를 엄청 먹였기 때문에 2연대랑은 비교가 안되는 생활이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2연대 출신들은 당시의 3연대를 해병대로 인정하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병이 침상에 누워 CDP를 듣는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 물론 3연대 출신들은 억울하고 기분나쁘시겠지만 암튼 당시 상황이 그랬다는 사실만 말씀드리는거고 저한테 테클 걸지는 마세요. ㅠㅠ

 

그리고 그때는 부대비표라는게 있었습니다. 연대별로 마크가 달랐는데 제가 있던 2연대는 노란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좌측 공수휘장 위에 21-3 (21대대 3중대) 이라는 노란색 부대비표를 달았었지요. 3연대는 파란색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길 가다가 파란색 부대비표를 보면 속으로 무시하고는 했었습니다. 뭐 그게 잘했다는게 아니고 그당시에 그랬다는거니까 진짜 3연대 출신 해병들 너무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냥 제가 있던 그 당시의 2연대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일 뿐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제가 일병때던가 사단장이 바뀌면서 부대비표를 없앴습니다. 해병대가 하나지 무슨 해병대 안에서도 부대를 구별하냐고 말이죠. 나름 자랑스럽게 여겼던 2연대 마크가 없어지게 되니 좀 서운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일인데 당시엔 2연대 비표도 나름 자랑스러웠습니다.

 

진짜 군대 시절 생각해보니 소재가 무한히 떠오르네요.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만 딱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적다보니 가지치고 가지치고 해서 분량이 자꾸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적는 군대 이야기이고, 또한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하는 군대 이야기입니다. 술자리에서도 절대 군대 이야기는 안했습니다. (물론 중대 출신들끼리 전역 후에 몇번 만나서 술자리 했던 경우는 제외) 따라서 글이 산만하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제가 복무하던 시절은 군생활이 26개월이었습니다. 당시엔 육군, 해병은 26개월 해군은 28개월 공군은 30개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군생활을 줄이겠다던 공약을 실천했습니다. 하필이면 907기 선임부터 군생활 줄어드는 혜택을 받게 되었고 907~912기 까지는 1주일 군생활이 줄어들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905기 선임한테 얼마나 놀림을 많이 당했는지... ㅠㅠ 진정한 해병은 26개월이라면서 우리보고는 짝퉁이라고 ㅠㅠ 그리고 더 억울한건 저보다 바로 한 기수 아래인 913기부터 918기까지는 군생활이 2주 줄었습니다. 한 기수 차이로 일주일의 격차가 벌어진거죠. 저는 딱 그 컷트라인에 걸려있었던 것이고 ㅠㅠ 2주 늦게 입대한 913기가 1주 차이로 전역을 하게 되는... 아무튼 줄어들거면 확 줄이든지 아니면 차라리 관두든지 하지 겨우 1주일 줄어놓고 905기 선임한테 놀림받았던 사실이 새록새록 기억에 떠오르는군요 ^^

 

제가 실무에 처음 배치받았던 당시에는 군생활이 26개월이었고 훈련소 기간이 6주였기 때문에 딱 터치기수 (할아버지 기수라고 부릅니다.) 와 만나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까 훈련소 6주 + 연대동화교육 3일 + 전역교육대 3일 하면 7주가 되기 때문에 정확히 저와 군생활 2년 차이가 나는 864기 선임은 저랑 딱 일주일 중대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던거죠. 그때는 사실 하루가 일년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겨우 일주일동안 같이 생활했던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864기 선임이 전역할 때 까지의 시간이 왜 그리 오랜 시간으로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당시에 저는 소대 배치받자마자 바로 외곽지 초소근무에 나가게 되었는데 (원래는 신병들 실수한다고 처음에는 근무 안넣는데 저때는 워낙 인원이 부족해서 바로 투입되었습니다.) 이거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암튼 그날 저는 오전 6~8시 근무였습니다. 889기 선임과 (당시엔 선임병을 오장 후임병을 따까리 라고 불렀습니다.) 근무를 들어갔었는데 교대후 중대에 돌아와보니 864기 선임들이 전역교육대로 떠나는 날이더군요. 중대 앞에서 도열이라고 하는데 2열로 쭈욱 서서 해병대 박수를 치면서 싸가를 부르면서 일일이 한명씩 악수하고 작별인사를 나누는 의례였습니다. 물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병영악습척결 문제로 싸가를 못 부르게 해서 더이상 "팔각모의 추억" 이라는 노래는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당시 889기 선임이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는 이 "팔각모의 추억" 이라는 노래를 안좋아 한다고 말이죠. 아마 이 노래는 육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전역후 보니까 의경들 중에도 비슷한 노래가 있더군요. 그래서 그 당시에 889기 선임이 이 노래를 싫어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해병대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게 864기 할아버지 기수를 떠나보내고 2년의 시간이 흘러 제가 전역하던 그날까지의 시간들을 앞으로 생각날 때 마다 하나 하나 회고해볼 생각입니다. 당장 지금 제가 기억나는 저의 군생활 소재들만 나열해보겠습니다.

 

 

 

1. 해병대 싸가 (빠따가, 주란꽃, 곤조가, 서울의 왕대포집, 소녀가, 천일기도, .........)

2. 제주도 해안방어 (완전무장 한라산 등정과 특전사, 대민지원)

3. 지옥같은 3주간의 공수교육 (피로 골절, 막타워)

4. 낙하산 이야기 (강하수당 4만원, 칠포 + 안강 DZ 이야기, 낙포교육, 하늘에서 사진찍기)

5. 검열과 구타

6. 암기사항과 기수빨

7. 100여가지의 인계사항

8. 외곽지 동초근무

9. 2002 월드컵

10. 여름과 전투수영

11. 한달간의 야외훈련 군단급 FTX (육군과 함께)

12. 주계작업

13. PX 추친

14. 해병대 구보

15. 추억록과 시트지

16. 전역과 싸인지

17. 전역과 알반지

18. 분대장 교육 3등과 포상외박

19. 2사단 근무지원 (석모도와 해안방어 + 문수산 호랑이 유격 훈련 + 메산리 특전교육단 기구강하)

20. 한미 연합 상륙작전

21. 해병대 훈련소와 DI

22. 일월지 군장판매소, 사진관

23. 종교활동과 초코파이

24. 전역교육대에서의 시간

25. 수색대와 수색교육

26. 질리도록 했던 사격

27. 5-6월의 대민지원

28. 가끔씩 열리는 부대 파티

29. 휴게실과 당구

30. 당직분대장과 순검

31. 수요일 전투체육

32. 야외 훈련과 전투식량, 벙커, 행군

33. 오어사 대왕암

34. 해병대와 삼겹살에 소주

35. 출타와 다림질

36. 팔각모와 각돌이

37. 연대 적전술 퀴즈대회 1등과 포상휴가

38. 탄피 짱박기

39. 상병 5호봉과 뽕라면 (뽀그리)

40. 해안방어와 전투복 물빼기, 기습복, 위장복, 공수부대와 붉은 베레모

 

 

 

아... 진짜 생각해보니 소재가 너무 많네요 ㅠㅠ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 소재들까지 생각하면...

 

아무튼 가끔씩 옛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회고해보겠습니다.

비록 컴퓨터랑은 상관없는 저질 군대떡밥으로 보이실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과감히 스킵해주시고

저와 함께 옛 추억에 빠져들어볼 생각이 있으신 분들만 함께 해주시면 되겠습니다.